프랑스 루르드의 성모
생명의 샘 루르드 성모

1854년 12월 교황 비오 9세는 '성모님의 원죄없는 잉태'를 믿을 교리로 선포했다. 이 시대는 물질만능주의와 자유주의 사상이 팽배한 가운데 소위 종교개혁이라는 거센 물결 속에 수많은 가톨릭 신자들의 개종이 있엇지만 루르드 주민들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신앙을 굳건히 지켰다. 프랑스 남쪽 피레네 산맥의 산록에 위치한 루르드의 가브 강가에는 마사비엘(massabielle)이라고 부르는 동굴이 잇는데 마리아께서는 무염시태 교의 발표 3년 2개월 후인 1858년 이 동굴에서 벨라뎃다라는 소녀에게 발현 하시어 "나는 원죄 없이 잉태된자"라고 자기 자신을 밝혔다. 성모님께서는 이곳에서 1858년 2월 11일에서 7월 16일까지 총 18번 발현하셨다.
1.발현
1858년 2월 11일 당시 14세의 소녀 벨라뎃다는 땔나무를 줍기 위해 마사비엘 동굴 근처로 갔다. 그때 황금빛 구름과 함께 동굴 위에 나타나신 아름다운 성모님께서 가까이 오라는 몸짓을 하셨고 벨라뎃다는 그곳에서 성모님과 함께 묵주기도를 바쳤다. 그리고 그후 2주동안 매일 그곳에 오기를 원하셨다.
2월 21일 여섯 번째 발현 하실때 성모님은 '죄인들을 위해 기도하라' 그리고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성모송을 바치라'고 말씀하시고, 2월 25일 아홉 번째 발현 때에는 "내 딸아, 지금 샘으로 가서 그 물을 마시고 몸을 씻어라" 하셧다. 성모님께서 손가락으로 가리키신 곳을 손가락으로 파자 물이 샘솟았는데 그곳은 지금까지 하루에 십만 리터의 물이 나오는 굉장한 규모의 샘이 되었다.
3월 2일 열세 번째 발현 때 동굴 앞에는 1,7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성모님께서는 그 자리에 성당을 지으라고 하셨다.
성모영보 축일이었던 3월 25일, 열여섯 번째 발현이 있던 날에 성모님께서는 그녀가 알아들을 수 있는 그 지방의 사투리로 "나는 원죄없는 잉태이다.(Que soy era Immaculada Concepcion)"라고 말씀하셨다.
가르멜 산의 동정 마리아 기념일인 1858년 7월 16일 벨라뎃다는 그 동굴에서 발현하신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운 성모님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았다.
2.발현의 의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는 잉태된 첫 순간부터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전능하신 하느님의 유일무이(唯一無二)은총의 특전으로 말미암아 원죄에 물들지 않고 보존되었다. 그때까지 오랜 시기에 걸쳐 이 교의는 치열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는데 이때 비로소 그 긴 논쟁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
성모님은 묵주를 가지고 계셧으며 발현 첫날에는 벨라뎃다와 함께 묵주기도를 같이 하심으로써 묵주 기도의 가치를 우리에게 행동으로 보여 주셨다. 벨라뎃다의 손을 거쳐 세상에 드러난 샘물은 많은 병자들에게 치유의 은혜를 주고 수많은 이들을 영적 삶으로 이끌어 주었다.
3.발현 후
교회는 1862년 이 발현을 공식적으로 인정햇다. 성모님의 원의대로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대성전'은 발현 장소인 성모동굴 바로 위쪽을 제대로 하여 1876년 건립되었다. 이 발현을 기념하기 위하여 1891년 루르드의 성모 축일이 제정되고(2월 11일), 1907년 교황 성 비오 10세에 의하여 전교회의 축일로 지내게 되었다.
1882년에는 의료국이 생겼고 환자들을 위한 병원도 마련되었다. 순례자들을 위한 목욕탕도 마련되어 있는데 20세기 초 일단의 의사들이 비위생적이라는 이유로 루르드를 폐쇄하려 했지만 루르드를 찾아드는 순례자 중에 단 한명의 감염환자도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고 이와 같이 자연법칙을 정지시키는 성모님의 작업은 오늘날까지 1세기 이상 계속되고 있다.
처음에는 대부분의 기적이 목욕탕 안에서 일어났는데 1905년 교황 비오 10세가 자주 영성체할 것을 제창한 후로 기적은 목욕탕 안에서보다 성체거동 도중에 더 많이 일어났다. 세계 각국에서 해마다 3백만명 이상의 순례자들이 몰려오고 갑작스럽게 병이 나은 기적들이 5천건이 넘는다. 몇 십년 전부터 아주 비판적인 각 나라의 의사들로 구성된 의사협회가 생겨 보고된 기적들을 과학적으로 면밀하게 검사하고 잇는데 이 협회에서 근래에 인정한 기적들만 해도 60건이 넘는다.
발현 메시지를 받은 벨라뎃다 수비루(Bernadette Soubirous)는 1844년 1월 7일 루르드에서 가난한 방앗간 집에서 6남매 중 첫째로 태어났으며 성모님의 발현을 목격한 14세까지 학교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다. 1866년 7월7일 느베르의 생질다르 수녀원에서 수도생활을 시작하였으며 13년째 되는 1879년 4월 16일 지병이 악화되어 35세에 사망하였고 그녀의 시신은 느베르의 생질다르 수녀원에 모셔져있다.
벨라뎃다는 1933년 12월 8일 '원죄없으신 성모마리아 대축일'에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성되었다.